오늘은 3시쯤 촬영이 끝났다. 일요일은 무언가 정신없이 가는 날인데 오후가 비어버리니 텅하다.
누군가를 만날까 생각하다 딱히 만날 사람이 없음이 떠오른다.
이럴 때는 여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공허감이 몸을 감싸는 듯하다. 뭔가 심심하고 뭔가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점에 책이나 사러갈까?
일단 카메라를 들고 전철에 몸을 맞겨 볼까?
몸은 피로한데 자꾸 무언갈 하고 싶어한다.
한편으로는 스튜디오는 이전의 촬영의 여파가 아직 남아 지저분한 상태이기도 하다.
손님외에는 사람을 안만나고 홀로 대부분을 생활하다 보니 뭔가 타인에 대한 조건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다음 주에는 오랜만에 보는 친구나 볼까 한다.
나갈 생각인데 아직 핸드폰 완충 전이어서 이렇게 글을 써보고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이 좀 편안해짐이 느껴진다.
심심할때면 책 본문검색을 해보곤 한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면 거기에 사족을 달아 본다.
- 나는 내가 아픈줄도 모르고: 불안할 때, 심리학 중에서
오늘은 셀프 촬영 3건 정도가 있었다. 손님을 응대하기는 했지만 뭔가 겉도는 느낌도 있다. 나는 기꺼이 그들이 좋은 사진을 얻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헌신을 하는가? 나는 내가 원하는 목표를 위해서 헌신을 하는 걸까? 나에게 오는 손님들도 만족하고 나도 만족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나의 안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를 잘 들어 주고 있는 것일까?
문득 공허함을 검색해 보다가 '용서'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공허함은 '실속이 없이 아무런 보람이 없다'란 뜻이다. 그런데 어떤 부분 때문에 용서가 떠오른 것일까?
나는 나를 단죄하고 판단하면서 스스로를 어딘가에 가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인간은 용서를 할 수 없다는 말이 입가에 멤돈다.
왜냐하면 인가는 누군가를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일어난 일이고 살아갈 따름이다. 무언가를 잘못됬느니 잘되었는니 판단할 수 없다.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으 1%도 체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저 약간의 힌트를 가지고 판단하는 척을 단죄하는 척을 할 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깊게 파들어 가본다면 공허함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판단 단죄들을 떠올리고 뿌리를 뽑는다면 삶을 경이로움으로 대할 수 있을까?
얼마전 부터 기적수업이 아른거린다. 제대로 읽은 적은 없지만 용서와 사랑에 대한 메시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 좀더 관심을 가져볼까나.